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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유 金榮培 KIM, Sang Yu (Korea, Male, 1926~2002)

판화가 김상유는 한국 판화계를 이끌어 온 선구자 중 하나이다. 인천 동산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미국, 일본 등의 판화 제작 기법을 연구하여 독학으로 동판화 작품을 만들어냈다. 1963년 한국 첫 동판화 전시를 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우리나라 미술계에서의 판화 저변 확대에도 힘썼다.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김상유는 월남하여 연희전문대학(현, 연세대학교)에 철학과를 다녔다. 하지만, 집안 형편상 중퇴를 하고, 인천 동산중학교에 교사로 재직하며 미술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과 일본 미술자료를 구해 미술을 공부했고 특히, 당시 한국에는 없었던 동판화에 매료되어 독학으로 익혔다. 동판화를 찍어내기 위한 프레스기가 없어 고물상에서 국수틀을 구입해 개조하여 사용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이렇게 어렵게 작업한 동판화로 1963년 첫 동판화 개인전을 열었다. 전업 작가로 전향하며, 작품에 몰두하여 서울에서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아, 일본 도쿄(1968), 오사카(1969)에서도 개인전을 가졌고, 해외 여러 국제판화전에 출품하였다. 1970년에 열린 제1회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동아일보사 주최)에서는현대인의 인간소외를 소재로 한 ‘막혀버린 출구(No Exit)’로 대상을 받았다.
김상유는 한국현대판화가협회의 창립 회원으로 우리나라 판화 저변 확대에도 힘썼다. 1968년 설립된 협회는 1960년대부터 해외 작가들과 공동 전시를 기획하고 한국 판화 홍보, 작가 발굴과 지원 등 현재까지 꾸준한 활동을 하며 한국판화 발전을 이끌고 있다.

아연판에 산을 부어 녹여 만드는 동판화는 세밀한 표현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연판 부식용 초산에 오랫동안 노출된 까닭으로 시력이 나빠져 동판화 작업을 하기 어렵게 되어. 80년대 이후에는 목판화를 중심으로 작업을 했다. 전국의 고건축을 순례하며 본 한옥과 법당의 공간과 형태에 아름다움을 느꼈고, 이것을 작품의 모티브로 삼았다. 

김상유는 유화에 집중하기도 하였다. 판화는 복제성 때문에 수집가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2002년 1월 기사에서는 “판화는 작업이 힘든데다 사는 사람도 없어서 붓가는 대로 그리는 유화로 바꿨습니다.”라고 남기기도 하였다. 

녹내장이 심해져 작품활동을 중단한 상황이었지만, 2002년 40년 작가 생활을 기념해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생애 마지막 대규모 전시회 열었다. 향후 작업에 대한 의욕을 보이기도 했으나, 같은 해 3월, 한국 판화의 선구자였던 김상유는 7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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